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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에서 치리를 당하신 예수님

종려주일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시었지만 일주일도 못 되어서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신다. 이런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유대나라는 사사시대에 이어서 왕정을 거치고 이어서 주위의 여러 강국들에게 포로 생활을 하고 귀한 후에 세월이 흘러 그리스의 헬라문명에 정복당하고 마지막으로 로마의 속국이 되었어도 여전히 율법이 다스리는 나라였고 나라 전체가 현재의 무슨 큰 교회와 같이 구약의 말씀으로 (물론 왜곡이 되었지만) 지배되는 나라였다.

      그러나 예수는 거의 혁명가였다. 폭력적이지 않은 그러나 아주 당시 현재의 시스템에 비추어 보아서 아주 현저하고 강력한 혁명가인 것이다. 일단 유대인들은 여호와 앞에 벌벌 떨면서 면전에 나아가면 즉사하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다. 구약을 전승하는 서기관들조차 여호와의 이름을 쓰는 차례가 오면 쉬었다가 유교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목욕재계를 하고 다시 와서 썼을 정도였다. 평민들은 여호와의 이름조차 부르는 것을 꺼리고 두려워하는 것은 말 안 해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마구 기적과 치료를 행하고 다녔던 것이다. 여호와를 아버지라고 부른 것에 그치지 않고 아바 아버지라고 불렀다. 히브리어로 '아바'라는 뜻은 우리 말로 아빠라는 뜻이고 영어로는 Father라기 보다는 dad daddy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구약을 왜곡해서 여호와를 자기네들의 물질을 보장하고 사회적인 위치를 확고하게 하는 데에 신으로 삼아서 숭배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그런 분을 아빠라고 한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한 유대인들은 자기네들이 신봉하는 큰 인물을 예수가 "얘네들아! 그 사람 우리 아빠야! 그러니까 까불지마! 그리고 나한테 절하고 경배해!"라고 들렸을 것이다. 그들의 귀에 예수님이 여호와를 아버지로 부른 것이 복음으로 들리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나를 믿고 여호와 하나님의 양자가 되지 않겠니? 나를 믿으면 너희도 하나님의 아들이 된단다."로 들리지가 않았다. 마음이 검고 악한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면 모든 것이 순전하게 거룩하게 들리지 않는다. 속된말로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십계명을 범했다고 즉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다고 사형을 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솔로몬의 40년 만에 지은 성전을 예수께서 "헐어라 내가 3일 만에 지으리라"라고 한 것에 대해서 분개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여호와 다음에 굳게 믿는 것은 즉 모세오경에 다음에 사사들과 그 후에 다윗이나 솔로몬 같은 왕들이었다. 그들이 정신적인 지주가 된 왕들이 정성을 들여서 지은 성전을 예수께서 하찮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성경을 왜곡하여 아전인수격으로 자신들의 치부와 권력의 도구로 삼을 뿐만 아니라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삼지 않고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분개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급기야 장사꾼들로 가득한 성전에 들어가서 그들을 채찍으로 몰아내고 돈 바꾸는 상을 뒤집어 엎으신 것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용감할 수가 있으실까 나는 잘 상상이 안 간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길을 가셨다. 장사꾼들의 많은 재산 피해를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예수를 사형에 몰아넣는 데는 (성전에서 유대인들이 사고방식으로) 난동(?)을 부린 것은 언급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죄목들이 너무 커서 작은 난동 죄는 끼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십계명의 죄들만해도 사형을 여러 번 당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고 또 안식일에 일을 한두 번 하신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신봉하는 왕들이 심혈을 기울인 성전을 헐고 다시 사흘만에 짓겠다고 하는 그런 굵직한 죄들만이 예수를 대적하는 것이었다.

      종려주일이라고 불리고 기념할 정도로 유대인들이 얼마나 정과 성을 다해서 예수님을 환영했는지를 우리는 잘 안다. 호산나라고 외치면서 얼마나 열광적으로 환영을 했는가? 호산나라는 히브리 말은 "구하소서 주여!"라는 뜻이 있다. 예수께서 자기네 나라를 로마의 폭정으로부터 구하고 즉 오랫동안 헬라의 속국으로 고생하고 이어서 로마의 식민지로 고통 당하는 데서 왕으로 군림하여서 유대인들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구원할 줄 알고 대대적인 환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군중들이 일주일도 안 되어서 폭도로 변한 것이다. 군중들은 어린 아이와도 같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이스라엘의 수많은 군중들이 그에게 돌아서서 다윗은 피난 길에 올라야 했던 것이지만 나중에 다시 압살롬에게 돌아섰던 백성들을 찾아서 왕위에 다시 오르게 된다. 군중들은 어린아이와 같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도 환영하고 모시다가 폭도로 대부분이 돌변하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러 오셔서 세리와 창기들 같은 불상한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폭도로 변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하여튼 예수님은 같은 동족들로부터 또한 자기 나라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유대교로부터 치리를 받아서 내침을 당한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는 상식밖의 사람이었고 죽여 마땅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래서 예수를 사형제도가 있는 로마에 내어주었다. 유대나라의 자기네 법으로는 사형시키기가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법과 심리를 너무 잘 알았고 군중들을 치료하고 기적과 이사를 베풀고 주옥 같은 생명의 말씀들을 수도 없이 전파해 주셔서, 실상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치기에는 너무 헷갈렸고 따르는 군중들이 많아서 역부족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결국은 빌라도를 은근히 협박까지 해서 유대인들은 자기네들의 예수를 사형시키려는 목적을 달성하고야 만다. 스스로 왕이라고 자처하는 자를 묵인하는 것은 로마 정권에 대한 모반을 묵과하는 것이고 그러면 빌라도도 역모에 가담하는 것이다라고 빌라도의 생명까지 위협을 하면서 드디어 예수를 십자가에 달고야 만다. 얼마나 악랄한가? 그러나 예수는 저희를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말라고 기도하신다. 저희들이 자기네가 하는 일을 모른다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이시지 않고는 이런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불쌍한 예수님 이 모든 일들을 인류의 대 구속사역을 위해서 이루셨다. 영원한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이 일 주일 앞으로 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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