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1 06:34

나의 진정한 모습

O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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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정한 모습

* 내가 늘 어리광 부리고 싶은 사람이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 사실 이런 때는 육아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라면 넘치는 감사를 드려야 하지만 나는 내가 투정을 부리는 것을 발견한다. 아주 어렸을 적에 나는 내 마음대로 안 되면 울다가 눈을 하얗게 뒤집고 까무라치는 즉 기절을 하는 아이여서 부모에게 감사하는 습성을 배우지 못하고 나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마구 발광을 하는 성격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서, 세 살 버릇 팔십까지 간다고 평생을 고생하고 있다. 위와 같은 경우에도 부모님이 멀리 가셨다가 돌아오시면 "~~ 이제 오셨구나!"하고 기뻐해야지 오히려 반대로 늦게 오셨다고 때리고 울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진정한 속 모습이다

* 내가 인정받고 싶은 사람에게 누구를 원망하고 하소연할 때에 그 사람이 오히려 원망하려고 하는 사람의 편을 들어줄 때. 바른 태도는 원망을 그치고 오히려 그 대상에게 원망보다는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기도한다. 하지만 나는 60을 바라보면서도 내가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부모에게 하듯이 어리광을 부리고 투정을 하듯이 한다. 하루 일과 중에 누가 나에게 섭섭하게 한 것을 내가 믿고 의지하는 분에게 하소연하고 나를 섭섭하게 한 사람을 "떼치!" 하도록 하면서 나무라주기를 바라는 나의 속 모습을 발견한다. 성경에 어린아이의 유치함을 벗어버리라는 말씀이 있다.

* 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 속으로 잘 알면서 믿음이 없어 딴 짓을 할 때. 이럴 때에 사도바울의 탄식이 적격이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라는 사도바울의 고백 말이다. 글쎄 이럴 때에 자범죄를 나에게 적용할 수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닌 것 같다. 나의 깊은 성령의 충만한 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은 이루지 못하고 연약한 육체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결국은 행하게 되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역시 사도 바울의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하는 기도 생활이 절실하다. "나는 날 마다 죽노라..."라는 고백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라!"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생각난다.   

* 머리 속에서 잡다한 생각이 나를 공격해 올 때. (이럴 때는 집중해서 말씀을 보거나 성경을 읽거나 글을 쓰면 된다. 그러나 나는 전에 믿음이 약할 때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나 힘들 때에 나의 모든 생각이 세상적인 해결책을 찾아 헤맨다. 고심하고 또 고심한다. 안수집사가 되어서도 말이다. 그런데 요새 최근에 믿음을 신중히 고려해보니까 믿는다고 늘 수없이 많은 예배를 드리지만 정작 교회에서 나와서는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실질적으로 생활에 믿음을 적용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래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끝 없는 생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생각의 지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럴듯한 해결책을 발견하고 너무 즐거워하다가 다시 맹점을 발견하고 한없이 괴로워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되풀이 한다. 그것이 바로 정신과에서 말하는 Bipolar라는 병의 증상이다. 그러나 요새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때 나는 "성경이 진리다. 그대로 하면 된다!"라고 외치면서 생각을 중단한다. 성경구절로 결론을 맺고 생각을 중단하고 휴식을 얻고 일상의 즐거운 생활로 돌아간다.    

*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 나를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고 상대방이 이끌어 갈 때. 이 말은 나의 인격이 아직 덜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도 나의 정신적인 욕구와 필요를 채워주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역시 어린 아이와 같은 유치함의 소치이다. 대화란 듣고 말하고 즉 자기의 순서를 잘 포착하여 말하고 정중하게 듣고 하는 것을 질서 있게 반복해야 한다. 서로의 영적인 욕구를 순서적으로 채워주는 질서 있는 대화를 하는 방식을 어른답게 키워나가야 하겠다.

* 아주 몹시 당황할 때 주여! 하고 탄식이 나오는지 아니면 욕이 나오는지 반성을 해야 한다. 면밀히 검토한 결과 나는 욕쟁이 인 것을 발견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욕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의 버릇이지만 말이다.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버지가 간곡히 타이르셔서 아마 국민학교 1학년 때에 아버지랑 놀다가 짜증나면 욕하는 버릇을 중단한 것 같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하나님한테까지 연장이 되는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해 욕하는 이 버릇을 고치느라고 거의 나의 건강을 잃을 뻔했다.

* 몹시 바빠서 서두를 때 특히 운전하다가 누가 앞을 가로막거나 갑자기 끼여들 때 나의 반응들이 바로 나의 모습이다. 근데 내가 보기에는 크리스찬은 서두르면 안 되는 것 같다. 바쁘면 내 속에 있는 모든 귀중한 가치관들을 밖으로 몽땅 내던져 버리고 한 가지 목적 지금 목전에 행하고자 하는 것에 올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는 좀처럼 서두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잰 소의 걸음이 빠른 걸음이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천천히 꼼꼼히 실수 없이 일을 하다 보면, 서두르다가 실수하여서 틀린 것을 돌아보면서 정리하고 고치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서, 사실 일이 더 빠르게 된다. 정말 실수한 것을 바로 잡는 과정은 차라리 새로 일을 다시 하는 게 빠른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고쳐놓은 작업은 꼼꼼하게 실수 하지 않고 이루어 놓은 작업보다 매끈하고 깔끔하지가 않다. 상채기가 있기 때문이다.    

* 아주 무서워 할 때...무서워하는 자체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죽음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사람도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쓰여 있다. 천국과 부활의 신앙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하겠다.

      위와 같이 나의 속사람의 모습을 정리해 보았다. 많이 반성하고 회개하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