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7 23:31

부르심

O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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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우릴 불렀다고 성경에 잘 나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사랑이 넘쳐서 먼저 예수를 선택하고 그 후에 예수의 사랑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데 우리는 한 가지 성품이라도 예를 들어서 분수를 알고 지킨다거나 하면 부르심을 받는 것을 알겠다.

      베드로의 설교에 3천명의 사람이 단 번에 주 앞으로 나온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뭐라고 덧붙였냐 하면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는 전부 다 나왔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사람이 만들어진 게 원래 그래서 사람은 구원을 못 받는다고 되어 있고 즉 악하게 만들어져서 마음이 완악해서 구원의 메세지를 무시한다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곧 구원 즉 부르심을 받으려면 한 가지의 성품이라도 선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안수집사가 되어 봐서 아는데 아무나 홈리스봉사에 들여서 일을 시키면 질서가 개판이 되고 내가 그 새로운 사람을 훈련시키느라고 오히려 일을 못 한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이런 저런 의견을 내놓고 강요하기 시작하면 것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항상 열린 교회, 주는 교회 또 키우는 교회라는 슬로건을 내 놓고 우리 교회는 목회를 하는데 기껏 홈리스 봉사를 오라고 초청했다가 나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혹 떼려다가 혹 하나 붙인 게 되어 버리고 만다.아무나 개나 소나 다 부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교회의 전도도 마찬가지이겠다. 사단의 앞장을 서는 사람이나 이단들을 끌어들여서 교회를 부흥시킬  수는 없다. 물론 누구나 방문하고 교회를 출석하겠다면 환영을 하지만 우리는 정말 인격에 신실한 것이 보이는 사람이면 더욱 열을 내서 전도를 하게 되고 물심양면으로 그를 교회에 인발브를 시키려고 할 것이다.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자식도 키워보면 알겠지만 더 예쁜 자식이 있는 것이다.

      나의 신앙을 좀 나누어 보면 나는 홈리스들을 참으로 긍휼이 여긴다. 태초에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었지 때문에, 정확하게 써 있지 않지만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고 누구나 다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홈리스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나 같은 죄 많은 사람도 지붕 아래에 사는데 저렇게 선한 사람들이 집이 없이 사는 게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래서 나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렇다고 내가 그 홈리스들 중에 하나를 내 집에 들이고 내가 거주지를 포기할 거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홈리스들을 다 구제 못 하니까 말이다.

      그냥 난 한 마디로 말해서 신앙인이 되기 전에 분수를 안다. 나를 무척 사랑해준 교회누나가 있는데 그가 나를 친동생보다도 더 3년 정도 사랑해줬다. 나는 그 분에게서 예수님을 늘 보곤 한다. 내가 남자형제들하고 일종의 자폐증 같은 게 있어서 잘 get along하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자매에게서 예수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나를 크리스찬이 되는 길을 보여주었다. 성경을 만 번 읽어도 한 번 잘 믿는 사람을 보고 경험하게 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글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지만 실례로 보면 가능하다는 것을 눈 앞에서 제시하기 때문에 그를 따라가거나 본 받게 되기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분수가 있는 사람이라 내가 포화상태로 사랑을 받았고 더 이상 사랑을 안 해주고 중단했다고 불평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12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3년 동안 밖에 못 받았는데, 전세계를 변화시켰는데, 나라고 분수가 있어야지 더 바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평생에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을 한꺼번에 다, 즉 최상의 지순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서 더 이상 삶에 대해서 미련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온전한 신앙인이 되었다고 자부하고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예수님을 위해 죽어도 추호도 아깝지 않다는 지경에 도달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예수님의 관점에서 보면, 마리아가 3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옥합을 깨뜨려서 부음으로 장례준비를 받았고 그 후에 곧 몇 일 후에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나 같은 천하고 벌레 같은 죄인이 향유옥합을 깨뜨려서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칼로 말리고 씻으신 것과 같은 마리아의 사랑을 경험하니 하늘이 나를 곧 부르시겠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숙연해진다. 예수님이 누구시냐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마리아가 보통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예수님의 발 밑에 발치에 앉아서 항상 말씀을 들어서 얼마나 몸과 마음과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놓았을까?

      나는 그런 향유옥합을 부음 받은 것 같은 큰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든지 아니 바로 십자가에 달린다고 해도 별 후회는 없다. 오히려 아니 왜 나를 십자가에 달지 않나 하고 조바심까지 난다. 그렇다고 몸에 나쁜 것을 막 먹고 수명을 단축하는 것도 웃긴다. 바로 전 글에 쓴 것과 같이 사랑의 왕 내 목자 예수를 생명을 다 바쳐서 흉내를 내는 것 밖에는 없다. 참고로 어떤 신학자가 Imitation of Christ라는 유명한 책을 썼다.

      얘기가 주제에 한참 빗나갔다. 부르심을 받으려면.... 교회로나 예수님에게로 말이다. 우리는 한 가지라도 정말 흠모할만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강직하다 던지 용감하다 던지 정직하다 던지 말이다. 뭐 하나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부름을 위로부터 받는다. 그래서 나머지 다른 분야에 덕을 쌓아서 하나님이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해라."는 명령대로 그대로 이루어 나가게 된다. 여기다가 신앙인이라면 다 아는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라는 말을 보태면 구태의연한 성경공부가 될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누구라도 그냥 하나의 올바른 성풍이라도 굳세게 붙잡고 살아가면 언젠가는 위에서, 가깝게 멀게나, 아니면 제일 위인 예수님이 그를 부르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