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2 13:35

쓰임을 받으려면

O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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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을 받으려면

우리는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수많은 지식중에 또 능력과 은사중에 우리가 무엇을 갖추어야 성공할까? 그것은 아주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우린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끊임없는 도전을 받기 때문에 주눅이 든다. "어떤 것을 어떻게 갖추어야 하나 ?"하는 문제는 시대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우리는 이것 조금 저것 조금씩 갖추어서 도대체 어디다 써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인격체가 되도록 필요한 지식과 은사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실패담을 들어보겠다. 내 친구중의 하나가 공부를 못 했는데 그가 자랄 당시에 영어의 공부가 붐이었다. 그리고 컴퓨터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여서 누구든지 영어단어를 많이 알면 큰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종종 친구들끼리 "나는 단어가 5만개가 있는 작은 사전을 하나 외우는 게 목적이야!"라는 고백(?)을 하고는 그것에 대해서 존경과 경탄을 받는 그런 시기였다. 그런데 사람은 한 번 무엇이 머리 속에 어릴 적에 박히면 그것으로부터 헤어나오질 못 하는 성향이 있다. 나의 그 친구는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소식이 없다가 수십 년 후에 그를 만났다. 그러면서 자기는 페인트가 본업이지만 단어를 매일 10개씩 수십 년을 외워와서 타임즈라는 어려운 잡지에 모르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어는 다 아는데 아쉽게도 타임즈의 기사가 독해와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발음이 아주 엉망이어서 그런 발음으로는 영어회화 조차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한 마디로 그는 가분수적인 지식의 모양을 띠어서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할 까? 하여튼 우스꽝 스럽게 되어버렸다.

      내 친구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 내 친구는 주위의 사람들과 사도바울의 서신서에 나오는 말같이 연결하여 하나님의 처서를 만들기 위하여서 자라가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쉽게 다시 말하면 실용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연결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내 친구는 단어만 10만개를 외웠다고 흐뭇해 하지만 그 외골수로 쌓아온 지식이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이롭게 하느냐?"하는 것을 신경을 안 쓴 것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주위의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주머니나 마음을 열게 하느냐?" 하는 문제에 신경을 안 쓴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의 등장으로 외우는 것은 신경도 안 쓴다. 그리고 회화를 원어민 교사를 어렸을 적부터 모셔와서 가르치기 때문에 발음이 아주 정확하고 외국에 나와도 참으로 대화가 잘 된다. 내가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신학이나 신앙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는 주위를 둘러보면 안다. 주위 사람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나는 누가 몰라서 믿음생활을 못 할 까봐 성경을 짜 맞추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 수많은 글을 써 왔다. 그런데 사실 그런 글들은 머리가 자꾸 복잡해지고 외울 것만 많아져서 사람을 짓누르는 수가 종종 있다. 우리는 교회를 나오고 나서부터 고민에 빠질 수가 있다. 바다의 물과 같이 많은 지식과 은사 중에 하나님은 우리의 제한 된 머리와 영혼에 바닷물을 담을 박아지를 하나밖에 안 주신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식과 은사의 수용능력이 누구나 비슷하고 제한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은사와 어떤 지식이 필요한지가 제일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율법사의 질문을 받으면서 아주 명확해진다. 생명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 전체를 일순간에 또 단번에 이 말씀 속에 다 요약을 시켜버렸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물론 사랑을 하려면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두째 계명을 보자. 이웃이라는 뜻 속에 거리적인 이웃을 말한다. 영적인 이웃이 있어서 좀 복잡해지지만 우리는 주위에 가깝게는 부모형제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는 은사와 지식을 개발하여야 하겠다.

      사실 은사나 지식을 쌓는 것을 결정하는 것의 제일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본인 자신이다. 본인 스스로가 갖추기로 결정한 지식과 은사를 쌓고 개발하려고 기울이는 노력이 자신을 평안하게 하느냐 즐겁게 하느냐 마지막으로 행복하고 보람되게 하느냐가 제일로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시간도 기쁘게 흐르고 기울이는 노력들이 효과적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 개인의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시고 모두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하는 모든 일이 우선 하나님을 즐겁게 하고 다음에 나를 즐겁게 하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은사나 지식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그들을 유익하게 할 뿐더러 그 결과로 자신을 즐겁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지식과 은사를 개발하거나 혹은 미래의 직종을 선택하려고 할 때에 자신의 부모나 조부모를 돌아봐야 한다. 그분들이나 주위의 염원과 기도가 자신의 몸과 영혼에 베여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미래의 자신이 몸담고 평생 일하는 직종의 선택에 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판사의 집에 자식은 남을 판단하는 성격을 받았을 것이고 교육자집안의 자식은 남을 가르치려 들 것이고 대접받는 습성이 몸에 베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사소한 것 같지만 그 사람의 미래를 절반은 좌우한다고 본다.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의 돌아가는 상황과 역사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러한 것들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를 크게 좌우한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하나님과 나를 행복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아무리 한 가지에 능하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중요한 것은 주위의 사람들을 서신서에서처럼 연결시켜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인격과 다른 사람과 맞물리는 능력을 가져야 하겠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리는 거대한 그림과 계획 속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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