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2 08:36

형벌을 받는태도

O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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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을 받는태도

레위기 26 41절과 4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와 있다. (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우리는 예수를 영접하자 마자 갑자기 예수님과 같이 변화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신학자들도 그렇게 말한다. 영접하자마자 우리는 예수님의 인침을 받아서 구원을 받아서 성도가 되지만 그 후에는 성화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목사님이나 신학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그냥 성령님이 임하시면 알아버린다. 주위를 돌아보면 도대체 누가 순식간에 변화한 사람이 있는가 말이다. 깨달음이 먼저고 그리고는 고통과 회한의 회개가 따르고 기도를 통한 결단과 실행이 따른다. 그렇다고 또 내면의 성품이 금방 선행을 실행한 후에 변화하는 것도 아니다. 세월이 흘러야 그것이 영혼의 내면에 흘러 들어와서 자신의 습관이 되고 습관이 쌓여서 인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영어로는 Ups and Down(좋은 시기 나쁜 시기)이 있기 마련이다. 잘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누구나 실수를 하여 범죄를 육적으로나 생각으로 저지를 수가 있다. 게다가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성경에 정했으니 예수님을 영접한 후라도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레위기 26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형벌을 받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첫째로 구약에 사랑하는 자는 자기 지식을 초달(매질)하지 아니하는 자가 없다고 쓰여있다. 하나님이 누구든지 꾸짖는 자는 사랑하셔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셔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찬양이 있듯이 때리시고 돌아오는 자들을 영접하시고 반드시 어루만져서 위로해주시고 치료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2차세계대전 후에 패망한 일본을 여러 가지로 미국은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성경의 기반 위에 세워진 미국이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서 일본을 긍휼히 보고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인은 중공업 육성에 전력을 기울였다고 하며 학교에서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하고 학급동료들에게도 공부를 안 하면 뒷산에 데려가서 묻었다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하여튼 그들은 경제적으로 대국의 대열에 오르는데 성공을 했다.

      두째로 시므이가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가는 도중에 다윗과 신하들에게 돌을 던지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의 명령이니 누가 여호와의 뜻에 토를 달 사람이 있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들도 저주하는데 베냐민 사람 시므이도 여호와의 명령을 따른다. 내버려 두라,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여호와께서 이 저주로 인하여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이 말을 보면 우리는 여호와의 선한 뜻을 늘 믿고 선으로 갚아주실 것을 소망하며 견디야 하는 것이다.

      형벌을 받는 것은 기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이시기를 서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구약을 읽어보면 참으로 많은 계명이 쓰여있고 그 명령을 준행하지 않으면 죽음으로 갚아야 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출애굽을 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을 하자 하나님은 노하셔서 광야 1세대가 다 죽기까지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지 않으시기로 작정하셨다. 물론 여호수와와 갈렙은 살아남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사형제도가 없어지는 추세가 강하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라 사람 속에 그런 성품이 존재해서 그런 경향은 요새도 여전하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미국 같은 사회에서는 사형은 할 수 없지만 대신 그냥 무관심이 최고의 벌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홈리스가 많이 생겨나는 것이다. 미국에서 개를 길러본 사람은 알지만 무척 순한 개들이 많다. 밥을 먹는 개들을 쓰다듬는다는 것은 예전에 한국에 자란 나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으르렁 거리거나 심지어는 주인이라도 물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개를 기르다가 카운티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소에 가져다 주면 곧바로 이 개가 사람들에게 순한지 아니면 사나운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사납다고 답이 나오면 한 달 안에 처리해 버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개들이 순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해가 갈수록 개들이 순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일단 형벌이 시작되면 하나님은 좋은 분이라는 것을 잊기가 쉽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좋으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기쁘게 자신을 돌이키고 새롭게 되기를 갈망하면서 자신을 말씀으로 조명하여 다시는 같은 벌을 받지 않도록 철저한 회개를 하여야 한다. 자신을 낮추고 겸비하게 하며 자신에게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것을 영광으로 알면 더욱 좋겠다. 설사 죽음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불러 가신다고 해도, 하나님이 직접 우리의 생명을 취해가신다면 그것 마저 영광으로 알아야 하겠다. 하나님이 손수 취해가시는 데 긍휼과 자비를 베풀지 아니하시겠는가?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완전한 인정과 그 앞에서 고개 숙여 겸비하게 하는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런 믿음을 가지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두려움이 없어지고 기쁨이 찾아온다.

      요한 1 4 18절 말씀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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