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6 09:22

의사소통 2

O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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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2

나는 수년 동안 홈리스봉사를 해왔다. 그러면서 이발봉사를 하는데 이발을 하라고 홈리스들을 초청하는 데 아주 애를 먹는다. 나는 평소의 사회생활의 방식에 맞춰서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그들에게 말해왔다. 영어로 하지만 이발하시겠습니까? 라든가 무료로 이발을 하는데 멋있게 잘 깍아드립니다.  뭐 이런 식으로 초청을 한다. 물론 먼저 인사하는 것을 빼먹지 않는다. 수 년 동안 그래왔다. 그런데 좀처럼 이발을 하려고 하지를 않아서 한 시간 넘게 몇 사람 못 깎는다. 심한 경우에는 한 사람도 못 깎는 교회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수백 명의 무숙자들이 있는 보호소인데도 그런 경우가 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운이 좋아야 여러 사람을 이발로 봉사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그렇게 효과 없이 이발하라고 권하는데 지치기도 하고 기도로 준비를 많이 했는데도 응답이 없는 것에 짜증이 나기도 해서 어떤 무숙자에게 소리쳤다. "! 너 이발 해야 되! 이리와!"라고 명령을 해버렸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순순히 이발에 응하는 것이었다. 물론 한번에 안되면 약간 웃으면서 "야 너 이발이 필요해!"라든가, "야 너 이발해야 되, 그러면 아주 멋있어져!" 등도 시도하는데 아주 성공적이다. 목소리도 군인이 호령하는 것처럼 우렁차게 보통 대화보다 좀 크게 낸다. 그랬더니 아주 성공적으로 여러 무숙자들에게 이발봉사를 하게 되었다.

      보통 사회에서는 특히 미국 사회에서는 절대로 명령하지 않는다. 그냥 권유를 하거나 제안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질문 형식으로 말한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특히 더 알 수가 없다. 넋을 놓고 딴 생각하다가는 무엇을 명령하는지 놓치기 일수이다. 더 어려운 것은 세상적인 표현으로 알아서 기어야 하고 알아서 갖다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외된 사람들이나 무숙자들은 사람이 그립고 명령이라도 달게 받는다. 어쩌면 평생을 사회에서 서로에게 눈에 뜨이지 않게 서로 명령하고 위계질서를 잡아가는 대화방식에 대해서 배우거나 이해를 하지 못 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어떻게 홈리스가 되었는지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혼동된 상황과 인생가운데 누군가가 강권적으로 자기에게 명령을 하면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차라리 고맙고 달갑겠다. 은인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뜻을 전달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강압적인 환경에서 자라나서 큰 소리나 명령을 들으면 자기의 혼이 달아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부드럽고 따스한 그리고 조용한 말만 듣는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사랑이 없이 다른 사람을 조정하고 이중적으로 말하려고 조그맣게 빠르게 웃음을 띄고 말하는 부드럽지만 잔머리를 굴리는 환경에서 자라나서 그런 것에 혐오를 느끼는 사람은 확신에 찬 크고 우렁찬 태도와 말을 듣기를 원한다.

      문제는 말하는 사람에게 제일 많다.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영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드러내는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다른 표현이나 말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신빙성이 없게 들리고 또 혹시 자기를 이용하지나 않나 하고 의심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 듣는 사람이 "왜 이 사람이 나에게 왜 이런 말을 하나?"하고 의심과 의문에 생각이 머물게 되면 그 다음부터 들리는 말은 울리는 메아리가 되어 그냥 허공에 스치고 지나가는 소음이 된다.

      나는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는 태어나서 평생에 세 번만 울고 말이 많아서는 안 된다는 문화에서 자라났다. (세 번: 태어날 때, 부모님 돌아가실 때, 부인 죽을 때) 그래서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고 나약함을 뜻하거나, 심지어는 여성처럼 당시 사회에서 일을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을 의미하게 되기 때문에 항상 과묵하고 끈기와 인내를 가진 남성으로 자라느라고, 나의 생각과 의사를 표현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말을 하면 그냥 발음만 하여서 간신히 뜻만 전달하지 나의 영혼을 표현하지 못 한다. 좋은 크리스찬들은 자기의 배에 있는, (예수를 영접함으로 얻어진 생수의 강에서 흐르는) 생명수를 말에 담아서 자유자재로 표현을 해서 듣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평상시의 일상적인 말을 하더라도 복음과 은혜가 느끼게 하는 대화를 한다. 얼마나 축복을 받은 크리스찬인가?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다고 이런 은사를 가지기를 참으로 사모한다. 그런 은사를 나도 개발하여 가지기 위해서는 기도로 준비하고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효과적인 대화에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다. 사람은 말을 할 때는 단어를 고르고 자신을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말을 하는 도중에 대개는 남의 말이 동시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언제 상대방의 듣는 귀가 열리는지 중요하다. 그것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진행되고 있는 대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무슨 목적으로 치달아가는지 잘 알아야 하고 내가 이 대화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상대방도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잘 파악해야 하면서, 어떻게 서로에 유익하게 대화가 진행될 수 있는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면 어느 때 상대방이 듣기를 원하는지 또 어느 때에 내가 들어야 하는지가 구분이 된다. 물론 권위가 있는 높은 사람이나 여자들에게 말을 끊거나 대화를 이끌어나가도록 양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화를 합리적으로 효과적으로 하는 기술을 배우는 데에 배울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누구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물려받아서 잘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그도 다른 부족한 것이 분명히 있고 우리는 하나님처럼 완벽하게 태어나지 않게 때문에 부러워하고 주저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다만 자기에게 부족한 기술을 늘 개발하고 연마하여서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는 평범한 사회인으로 성장해야 한다. 평범하다는 것이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참 어렵다. 왜냐하면 누구라도 "나는 남들은 모르지만 아주 부족한 어떤 면이 있어!"하고 고민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심지어는 나는 "내가 가장 부족한 그 분야에서만으로 사람을 절대적으로 평가한다면 난 장애인이야!"라고 고민하며 자격지심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구체적이나 조직적으로 또는 학문적으로 쓴 글이 아니고 그냥 붓 가는 대로, 쉽게 말하면 써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라 약간 독자에게 두서가 없이 이해나 정리가 안 될 수도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방언을 하는 사람을 본다.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언어나 또는 알 수 없지만 소리로 표현하는 것을 본다. 그렇듯이 몸과 얼굴 표정과 자세 그리고 손짓 발짓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표현할 수가 있고 여자의 경우에 특히 더 그렇지만 옷이나 장신구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할 수가 있다. 이런 것들이 백업(BackUp)이 되어서 의사전달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꾸 글이 길어지니까 결론을 내야 하겠다. 이렇게 장황하게 쓰니까 내가 대화의 달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거의 어눌한 사람이다. 그냥 나이 들어서 대화의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서 조목 조목 느끼는 것을 적을 수 있을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나처럼 기술 하나하나를 정리해서 쓸 수는 없어도 자기도 모르게 배웠거나, 타고 나서 이미 대화의 달인인 분도 많다. 글을 끝을 내야 하겠기에 한 가지만 더 쓴다면 "사랑과 중보기도를 통한 배려가 쌓이고 쌓이면 나와 상대방의 영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무엇이 필요한가 정도는 알게 되고 바로 이것이 유능하고 효과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기본이 되겠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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