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8 19:48

신학교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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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와 교회

새벽기도 때마다 배우는 것이 있다. 물론 설교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당연하고 40일 동안 커피 보리차 당번을 맡으면서 나는 커피 보리차를 끝까지 기다렸다가 치우고 가느라고 기다리는 동안에 기도를 끝내시고 나오시는 성도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짧게 친교도 하며 성도의 교제를 나눈다. 그러면서 교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가 윤곽이 잡혀온다. 바로 따스한 미소와 인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목사나 전도사가 아님으로 어떤 때는 우울할 때도 있다. 물론 기도가 잘 안 나오고 전날에 해결되지 않은 일이나 모욕당한 일이 새벽부터 생각이 나서 화난 얼굴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러면 일종의 안내나 기도를 보는 사람처럼 커피 보리차를 시중들고 있으므로 새벽예배 교인들 거의 전부와 나오는 순서대로 눈이 마주친다. 그러면 아마 교인들은 내 얼굴에 따라서 별의 별 생각을 다 할 것이다. 내가 화난 얼굴을 하고 있거나 슬픈 얼굴을 하고 잇으면 교회에서 내가 뭐 잘못해서 영적으로 심오한 분들이나 목사들이 나를 책망하면서 무슨 전하고 싶은 메쎄지가 있어서 커피나 보리차를 대접하는 집사를 시켜서 나를 감시하나 하고 낙망한 표정을 하고 지나가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90년대 초반까지라고 생각하는데 사상이 온전치 못하거나 공산당적인 불온사상자를 고발해서 유죄판결이 나면 5천만 원이었고  진짜 간첩은 1억 원의 포상이 주어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포상금에 혈안이 되어서 그런 적색분자를 색출하려 하는 문화가 있었고, 게다가 그 때 당시 나는 괜히 사회 부적응자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교회에서도 쫓기고 감시 당하는 느낌을 수없이 받아서 이해가 간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봉사자로서 따스한 아버지 같은 미소를 보이지 않는 것이 무슨 큰 죄를 짓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번득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교회에 와서 위로를 받으러 왔지 무슨 자기의 죄상을 생각나게 하는 엄한 감독관의 눈초리나 분에 가득한 혹은 불만스러운 얼굴을 보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학교라면 모를까?

      또 하나는, 전도사를 잠깐 해보고 중퇴했지만 신학교를 다녀 본 나는 목사들이 나의 배경을 알고 있어서 설교 시간에 은근히 나에게만 전달되는 메쎄지를 받곤 했다. 어느 날 수련회 때에 어느 목사께서 내가 신학교에서 배운 기술(?)로 주위의 누구를 영적으로 고치려 하지 말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보통 사람들을 함부로 고치려 하면 돌아버리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쉽게 말하면 초등학생에게 고등학교 수학을 풀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준비가 된 상태에서 다음 단계의 지식이나 기술을 주고 차근 차근 지식이나 인격을 개발해야지 감당 못할 시험을 통과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설교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은 어떻고 무엇은 어떻고 진리를 선포하는 것은 좋으나 수많은 진리를 쏟아놓고 지켜라 하고 명령은 하기는 쉬운데 듣는 교인들은 쇄도하는 수많은 주문 중에 어느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부터 고민을 하게 된다. 신학교는 괜찮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남은 생애를 목회에 바쳐서 주의 종이 되려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들어왔고, 또한 시간도 많고 준비도 된 사람들이라서 하나님의 말씀의 도전을 통한 충격이 와도 기도하고 몇 일을 고심하며 고쳐나가고 배워나가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신학교에서처럼 설교를 하면 몇 일간 하나님이 도전하시는 것에 대한 충격을 흡수하는 데에 모든 일정이 망가질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교인들은 일을 가는 분들도 있고 비지니스를 하는 분도 있고 자녀를 기르는 주부도 있을 것이고 평범하게 일상을 다 소화해야 하는 평신도들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교회는 고령자들이 많아서 아마 90 퍼센트의 새벽예배의 출석교인들이 집에 가서 쉬는 분들이겠다.  그리고 대부분 평생이나 수십 년을 신앙생활을 해온 베테랑들이기 때문에  별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90년대 초반에 샌프란씨스코의 북쪽에 가까이 위치한 미국 최대의 개신교 교단인 남침례신학 대학원(Seminary)에 다닌 적이 있었다. 그 때에 들은 이야기인데 신학교에서 통계를 내본 결과 백 명의 입학자중에 졸업 후에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는 분들은 다섯 명 정도라고 했다. 나머지는 졸업을 해도 졸업장만 있었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나 신학교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운다고 다 깨달아서 소화하고 응용해서 주의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며 살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모든 것을 알게 하시는 주체가 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신 것을 알겠다.

      교회라는 것은 일단 전체를 보고 평균치를 파악하여서 즉 가장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초점을 맞추어서 메세지를 전달하면 좋겠다. 그리고 교회의 안에서는 선을 행하기 힘들어 하고 실족하며 실수 투성이인 평신도들을 아버지 같은 인품의 집사님과 장로님들이, 격려하고 배려하는 미소가 가득 담긴 얼굴로,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소망을 심어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교회는 사실상 그런 일반교회를 떠난 차원에서 신학교에 가까운 가르침과 도전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고령의 교인들이 말년에 하나님께 전적으로 쓰임 받기를 원하며 주위에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헌신적인 기도의 본을 보여주고 귀한 가르침을 주고 세상을 떠나는 성공적인 신앙인들이 다 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에 온 한국교포들은 한국의 문화에 젖어서 즉 자녀 교육을 위해서 이민 온 교포들이므로, 뼈 빠지게 일해서 또는 비지니스를 해서 돈을 모아서 집을 사고서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는 극빈자가 받는 Medi-Cal을 신청해서 혜택을 받으려고 집을 자녀들에게 주어버리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어떤 교회에서는 노인들이 죽으면서 전부 돈을 완납한 집을 자녀에게도 주지 않고 교회에 바치고 세상을 떠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까지는 못 하더라도 자녀들과 주위의 사람들에게 당차게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신령하고 아름답고 용기가 넘치는 신앙심을 물려주고 하늘나라에 가시는 분들이 차고 넘치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바이다. 어렵더라도, 영싸! 영싸! 구호를 목소리를 합하여 외치고 있는 힘을 다해서 새로운 담임목사님과 훌륭한 부목사님들을 모시고 숫자가 아닌 질적으로 높고 심도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충만하고 가득 넘치는 위대한 교회의 건설을 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새 해에도 매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