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6 18:57

하나님의 음성

O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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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

우리는 과거의 교회사를 통해서 신비주의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았고 정통성을 잃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체험을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것을 꺼려한다.  왜냐하면 우선적으로 복음의 광범위한 통일성을 흐려놓을 염려가 있다. 쉽게 말하면 분명히 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나는 왜 그런 경험이 없어? 그럴 것이고 심지어는 나는 구원을 받았나? 하고 의심하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 해서 "어쩌면 누구처럼 그런 경험이 있어야만 구원을 받는 건지도 몰라!"하고 고민에 빠져서 하나님께 멀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고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 속에는 별의 별 희안한 일들이 다 일어날 수도 있다. 물론 전혀 안 일어날 수도 있다. 딱 잘라서 말하면 사람마다 다르고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도 각각 모든 개인에 따라서 다르다.  그러니까 그런 영적인 체험에 대해서 너무 고민할 것은 없다. 반면에 누가 그런 경험을 얘기하더라도 "에이 웃기지 마세요!"하고 일축해서도 안되겠다. 다만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들어주면 좋겠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서 사십 일 사십 야를 시내 산에 올라가서 여호와를 대면하였다. 그런데 그가 들은 음성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우주의 창조의 원리를 설명한 것도 아니었고 무슨 신령한 천국에서의 생활을 일일이 설명해준 것도 아니었다. (물론 요한계시록에서는 중요한 굵직한 윤곽은 말씀하셨다.) 그가 받은 것은 십계명이 들은 돌판이었고 성소를 짓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즉 장막과 그 안에서 쓸 기구들의 모양을 설명해 주셨다. 종종 우리는 하나님이 복권의 당첨번호나 미래의 일어날 일들이나 무슨 신비한 것을 말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모세가 들은 것이 아주 간단하고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잘 되기에 또 여호와를 섬기기에 필요한 것들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쉬운 예를 들면 A라는 장로와 B라는 성도가 있는데, A장로는 새벽기도가 끝나기 전에 나와서 커피와 보리차를 준비하라고 하고 B라는 성도는 목사님의 축도까지 녹음을 해서 전송을 받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고심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할 것인가 아니면 이사야 9 6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예언에 대한 말씀처럼 기묘자요 모사라 전능자이시고 평강의 왕이신 분에게 기도를 할 것인가에 대한 기로에 놓이고 만다.  이 예언의 말씀처럼 우리는 기묘자와 모사이신 즉  다시 말하면 명철이 한이 없으신 예수님께 지혜를 구하여야 한다. 우리가 믿는 자라면 말이다. 그런데 기도 중에 그러면 녹음을 계속하되 폰을 앞자리에다가 놓아두고 끝나기 5분 전에 나가서 커피 보리차를 봉사하고 나중에 봉사가 끝난 후에 돌아와서 계속 녹음을 하고 있는 폰의 녹음을 중지하면 축도까지 다 녹음이 되어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자. 그러면 그건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누구는 아니 그거야 바보 아니면 다 아는 거지라고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가장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내 폰을 누가 훔쳐가면 어떻게 하지?"였다. 그러나 교회에서 누가 가져가겠어 하면 믿는 마음이 없으면 A장로와 B성도를 둘 다 기쁘게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두째로 하나님이 지혜의 근본이신 것을 믿는 자라야 응답하신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 분을 만족하게 할 지혜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해결책이 없다고 절망에 빠져서 A장로나 B성도의 둘 중에 하나를 원망하거나 심지어는 욕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두 분 다에게 내가 칭찬과 사랑을 받지 못 한다고 하나님까지 원망하는 자리에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세째로, 하나님이 지혜의 하나님이신 것만 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그 해답이 되는 지혜를 나에게 주실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장로와 다툼을 하게 될 것이다. "아니 내가 B라는 성도에게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조금 늦게 커피와 보리차를 준비하면 안되냐?"라고 할 수도 있고, 또는 그 장로의 속마음을 의심하는 온갖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사탄이 역사하면 온갖 재앙에 이를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혼의 움직임은 신비로워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좋으심과 지혜의 보고이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늘 기도에 힘쓰지 않으면 우리는 평안의 복과 지혜를 누릴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음성이 별 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복락을 위해서 또 하나님 당신을 잘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모든 예언은 신구약 66권에 벌써 다 되어있다. 우리는 그 말씀에 비추어서 어느 생각이라도 성경말씀에 맞는 것이 떠오르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 것이다. 더 어렵게 근사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나에게 계시하신 것이다. 계시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하다.

      요엘 2 28절에도 나와 있지만 거의 같은 말씀이 사도행전 2 17절에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거하는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신비하던 아니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경적인 생각이 내게 떠오르면 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데 합당한 생각이 들면 바로 "오 하나님! 저에게 말씀하셨군요!"하고 기뻐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어서 열매를 맺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김종규목사님의 설교 스타일처럼 그것은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또 다루고 싶다. 미리 예고편을 잠깐 보여드리면 그것은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와 연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