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8 22:25

전도의 미련한 것

O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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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미련한 것

고전 1 21절 말씀(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은 참으로 심오하다.

      전도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나보고 몇 사람을 전도했냐고 물으신다면 부끄럽게도 한 사람도 못 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혹자는 "뭐 그런 안수집사도 있어?"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근데 막상 녹음기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이다. 말이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닌 것이다.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이 이해하도록 그 사람의 영혼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에 심어지도록 하는 것이 말인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입이 안 떨어지는 이유를 오늘에야 확실히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영혼의 아픔을 경험함을 통해서 남의 영혼의 상처를 보는 눈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영혼의 상처를 보는 눈이야 말로 저절로 입에서 그를 치료하고자 하는 말씀이 생각나게 하고 그 사람의 아픔을 같이 나누고자 하는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항상 기쁘게 사는 사람은 없다. 차라리 영혼의 깊은 고뇌 속에서 방황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요 저주를 받은 사람이다. 그 고통의 기간이 오래 지속되어서 모든 희망이 사라질 때에 암흑의 지옥 같은 무의미함 속에서 헤매며 울부짖고 눈물을 흘릴 때에 한 줄기의 빛을 또한 위로를 경험한 사람은 안다. (여기서 오래라는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을 말한다. 하루도 우리는 천년 같이 방황할 수 있고 수십 년 동안 방황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위로가 정말 뼈저리게 내게 느껴지고 평생을 잊지 못하는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나의 기쁨을 같이 나눠준 사람은 금새 잊혀지지만 나의 아픔을 위로해주고 고통 속에서 건져준 은인은 평생을 잊지 못하고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갈급함을 경험해 보고 말씀이 없는 지옥적인 경험을 해본 사람은 말씀을 통한 구조의 손길과 은혜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전도의 시작인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를 만나던지 그 사람의 영혼의 상처를 보는 영적인 안목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전도의 시작인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 자연히 성령께서 내가 할 말을 내 입에 담아줄 것이요 내가 전도의 대상에게 복음과 은혜의 통로가 될 것이다.

      또 위의 말씀에 우리의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뜻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나는 날 때부터 귀먹은 청년을 안다. 그런 사람은 자연스럽게 벙어리가 된다. 그 이유는 태에 생겨날 때부터 시작해서 평생을 소리라는 것을 들어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가 소리라는 개념 자체가 그의 뇌 속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목젖이나 성대나 혀와 그리고 입을 어떻게 놀려야 듣는 이가 이해하는 소리가 나오는지를 전혀 경험하지 못 했고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복음과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 했을 때는 우리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택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경험하여서 말씀을 이해하고 살아본 사람만이 하나니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태초에 쏟아 부으신 사람을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이 선택한 어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 사랑과 은혜를 사랑으로 전하고 그 전함을 받은 사람이 또 그 역사를 다른 모르는 이에게 전하는 과정이 세대와 세대를 거쳐서 반복하여서만이 즉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만이 우리가 은혜를 알고 깨달아서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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