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6 15:47

나는 누구인가?

O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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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우린 흔히 정체성이라는 말은 쓴다. 젊은 세대를 위해 쉽게 쓰려고 제목을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제목으로 썼다. 우리는 항상 이 질문에 대해서 명확한 그리고 뚜렷한 믿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8 34절에 하신 말씀 때문에 우리는 혼돈에 빠지고 만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말씀 중에 "나 자신을 부인하고" 라는 말씀 때문에 그렇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줄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무아지경이라는 가르침이 전통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유교와 불교에 젖은 한국 문화에서 자란 우리들의 뇌리에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을 겪으면서 또 그 후에 민주화의 진통을 겪으면서 우리는 나를, 즉 자유를 만끽하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 타부 즉 금기로 되어버렸고 그것이 위험에 나를 노출하는 지름길인 것을 체험적으로 느낀 우리는 위의 성경말씀에 나를 부인한다는 말이 바로 전체를 즉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문화의 강압적인 최면에 의해서) 것으로 풀이가 되기 때문이다. 쉽게 풀면, 나의 가치조차 부인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위의 마가복음 8 34절 중에 나온 "나를 부인하고"라는 말씀은 나의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욕망을 부인하라는 말이지 나의 정체성이나 가치를 부인하라는 말이 아니다.

      어느 불교를 믿는 사람이 간증을 쓴 것을 읽었는데, 용한 스님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설법한 내용이 감명이 깊어서 자신에게 평생을 그 질문을 하고 지낸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말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한 마음으로 고민하면서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게 된다고 고백하였다. 정말 우리는 얼마나 내가 나 되게 살아가고 있고 얼마나 내 생각을 표현하고 살며 얼마나 나 스스로 무슨 일에든지 결정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직장이나 사업체에서는 사장이나 고객을 위해서 존재하고 가정에서는 남편이나 아내를 위해 살아가고 교회에서는 목사님과 장로님들을 위해서 살아가다 보면 나란 없고 상대방의 가치관 속에 존재하는 소위 나라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진리를 모르는 불자들도 이렇게 깨달음이 있는데 믿음을 가지고 늘 배우는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위해서 살아가야 하겠다. 사실 예수님이 성경을 완전히 두 계명으로 압축시켜서 말한 첫 계명은 하나님을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하라는 것이지만 나머지 반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해야 남을 내 이웃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기성세대는 그렇게 나를 희생하는 것만이 미덕인 것처럼 느끼고 완전한 진리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좋은데, 자신의 감정이나 자유의지 조차 부인하고 불쌍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새의 젊은 세대에 자란 한국인들의 사고 방식을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30 40대의 젊은 사람들은 자기를 존중하고 중요시하는 성향이 더 나이들은 세대의 우리보다는 많이 가지고 있다. 물론 장단점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상고해보면 그들은 그들의 역사 즉 애굽에서 탈출한 것과 그들의 가나안 정복전쟁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해서 샅샅이 기록하고 절기를 만들어서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럼 우리 믿는 신자들은 한국의 우리의 조상들을 싹 무시하고 기억도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역사만 달달 외우고 살아야 하는가?

 가만히 상고해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조상을 인도하신 것들을 잘 기억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행적을 기억하고 제사는 드리지 않을 망정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기뻐하며 기념하여야 한다. 그것이 더 성경적이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로 여기까지 믿음의 후예로 이끌어준 것을 중심으로 우리 조상을 기념하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누구의 아들이고 손자인지 혹은 손녀인지, 어떤 배경을 통해서 태어났는지, 어떤 기념할만한 일들을, 멀게는 몰라도 가까운 조상들이 해내었는지를, 자세히는 모른다 할지라도, 굵직 굵직한 것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그들은 생전에 예수를 믿는 신앙을 못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통해서 나를 믿음으로 인도하게끔 역사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려야 한다. 그럼으로 인해서 내가 누구인지 자세히 알게 되고 나와 조상들과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충실한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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