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0 09:20

예수님의 나심

O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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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나심

마태복음 1 25(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의 말씀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서 요셉이 그 사실을 알고 가만히 끊고자 했으나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서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를 데려오라는 명을 받고 순종하여 데리고 오고 나서의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당시의 풍습으로 주위 사람들이 인정할 수 없는 일을 격은 요셉은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라 꿈에 나타난 주의 사자의 말씀을 이해하고 인정하였던 것이다. 그 만큼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적이고 하나님이 수시로 교통하심을 입은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구약에 기록 된 예수님의 나심에 대한 여러 예언들을 여러 세기를 걸쳐서 믿고 고대하던 영적으로 충실한 사람들이 항상 있어왔고 동방박사들도 그 예언을 따라 아기 예수께 왔던 것이다.     

      요셉은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거침돌이 되지 않고 예수님의 권위와 성령의 권위를 두려워 떨며 지켜서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섬김의 본을 보여준다. 섬김이라는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실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라는 감동이 온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도 아무도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타시었다는 것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다. 그 만큼 예수님은 전혀 때묻지 않은 것, 곧 거룩한 것을 원하시며 우리는 그것들을 드려야 한다. (한 예, 첫 소산과 첫 수확)

      어떤 신학자가 쓴 책에는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요셉이 다른 부인을 또 두어서 예수님의 형제들은 마리아가 아닌 다른 부인에게서 낳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 없는 것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별로 유익하지가 않으므로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다. 성경에 없는 것은 그냥 넘어가면 되겠다. 하지만 그 신학자가 왜 그런 추측을 했는지는 그 중심이 옳게 보여서 그냥 한 번 말해보았다, 비슷한 예로 예수님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폭도들이 데리고 와서 예수님 당신은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을 때에 땅에 앉으셔서 땅에다가 글을 쓰셨다고 하지만 그 내용도 나와 있지가 않다. 그냥 추측이 난무할 뿐이다.

      나는 자라면서 아이들은 중요하지가 않다는 문화권에서 자라서 그런지 애들에 대한, 특히 애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지가 않고 느낌이 별로 없고 아기를 보아도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아기 예수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줄 수가 있을까 하고, 솔직히 말하면, 그런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예수님의 성장 과정이 정경으로(Canon: 개신교의 신약 27권 구약 39) 확정된 신구약에는 전혀 나오지 않고 12살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였다는 것만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외경에서는 예수님의 어릴 적 이야기들이 종종 나온다고 한다. 예수님이 흙으로 비둘기를 만들어서 진짜 비둘기로 변화 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성경으로 확정되는 과정에서 그러한 외경들은 모두 빠졌다.

      어찌되었든 간에 나는 성탄의 계절에 아기 예수님의 나심을 보고 죽겠다고 한 선지자 안나를 기억해본다. 결혼한 지 7년 만에 과부가 되고 성전에 들어가서 84년간 봉사하다가 아기 예수를 만났다. 또한 같은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시므온도 아기를 보고 기쁘게 하늘 나라 가는 것을 기도응답으로 허락 받았다. 나는 이처럼 안나와 시므온의 신앙을 본 받기를 원한다. 미약한 것에서 섬세한 것에서 우리는 아기 예수를 발견하고 경배하는 영적인 눈이 아쉽다. 현재 우리도 믿는 어린이와 신앙의 여인들에게서 예수를 발견하고 예우를 갖추어서 교제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