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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홈리스

나는 홈리스봉사를 17년째 하고 있다. 그런데 여태까지 마음 없이 건성으로 해온 것을 그저께 깨달았다. 마음을 두고 정말 그 영혼들을 품고 기도하며 봉사하며 나아갔냐는 나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도전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최근에 겪은 두 홈리스를 보면서 나는 심한 마음에 충격과 동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나는 마이클이라는 홈리스인데 그는 내가 들은 바로 또 지켜본 바로 30년을 넘게 홈리스를 해왔다. 그는 냄새는 나지만 항상 단정하고 예의 바르기 때문에 내가 홈리스들 중에서 하나를 뽑는다는 우쭐한 마음에 그를 미스터 싼나아나라고 별명을 붙여서 봉사하는 여러 분들에게 항상 소개시켜주고 작은 돈이지만 매주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진갑권사님이 인도하시는 성경공부에 그가 늘 최우수 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저께 처음으로 봉사를 마치기 전에 (출발하기 전에) 잠간 얘기를 나눴는데 지난 주중에 비가 몹시 와서 양말과 신발이 젖어서 비닐을 신발에 깔았는데도 온통 다 젖어서 추위에 부들 부들 떨었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가여워서 할 말이 없어서 성경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잠깐 들려주었다. 내가 복음을 전할 자격이 있는지 몰라서 주춤했지만 그냥 같은 하나님이 만든 사람으로서 복음을 나눈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은 가난하고 정직한 자를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사랑하시고 하늘 나라에 가면 마이클이 나보다 높은 위치의 사람일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다 나누어주어서 더 가난해져서 하나님께 더 축복을 받지 않는 이유는 게으르고 가난이 무섭고 믿음이 적어서일 뿐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의 두 눈이 빨개지고 충혈되면서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서 나도 거의 울뻔했다. 그 일이 계속 잊혀지지 않고 머리에 맴돌았다. 그리고 창피한 말이지만 내가 17년 동안 홈리스봉사를 했지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기념할 만한, 나로서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속으로 "아 복음은 이렇게 전하는 거구나!" 하고 깨달음이 왔다. 안수집사로 부끄러운 고백이 아닐 수가 없지만 기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또 한 사람은 날 때부터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어려운 홈리스였는데, 내가 이발 봉사를 하면서 항상 빡빡 깍아주었다. 수차례에 걸쳐 봉사를 했는데 쉘터에서도 쫓겨난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왜냐하면 내가 삭발을 해준 후에 그는 카트를 끌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오래간만에 나타난 그 홈리스는 말라있었고 마음이 많이 상한 채로 나타나서 내 마음 속이 많이 아팠다. 그는 밖으로 걸어가면서 하늘에다 대고 수없이 욕을 계속하면서 걸어갔다. 그는 자기가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을 못하는 상태로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아 온 것이고 지금도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의 하늘에다 대고 욕지거리 하는 모습을 보고 나의 모습을 느꼈다. "그게 바로 나!" 라고 마음 속으로 외쳤다. 그래서 그와 같이 몇 분에 불과하지만 같이 걸었다. 물론 그는 욕지거리와 저주를 계속했고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 했지만, 동류로 돌아가라는 이지춘목사님의 말씀대로 끼리끼리 모일 때에 치유가 있고 배움이 있고 위로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와 같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잠시 걸었다. 오랜 동안 그의 불량한 태도 때문에 보호소에서도 쫓겨났지만 주님이 그와 늘 동행해주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