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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도하는 자세의 고칠 점

나는 나의 속사람을 돌아보면서 여러 가지를 성경에 비추어보았다. 느낀 것은 여러 가지의 감정의 움직임이 성경에 비추어 볼 때에 합당하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일단 이런 현상이 발견이 되면 회개에 들어가야 하고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장기간의 계획을 짜고 기도에 힘써야 한다. 나는 한 동안 기도제목이 없는 저주를 받았어도 모르고 지냈다. 사실 기도제목이 없는 것은 정말 저주인 것이다. 어느 날 , 신학교에 재학중에  목사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새벽기도를 한국교회에서 매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이에 어떤 미국목사가 하는 말이 무슨 기도할 제목이 그렇게 많으냐고 빈정거렸다. 사실 미국은 어느 정도 복음에서 멀어졌다. 나는 한국 기독교인으로 선택을 받고 태어난 것이 참으로 감사하게 느낀다. 그리고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단지 한국교회가 새벽예배를 매일 드린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국을 축복하고 그 교회들을 축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것은 내가 기도할 때에 해결점을 찾고 응답을 받으려고 하는 데 항상 급한 마음으로 조급하게 바라는 태도를 발견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세가 안되어 있는 것이다. 더 확대해서 말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인 것이다. 하나님 보다 앞서가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완전한 해결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감사하는 영혼이 완전하게 되어서 다시는 그 제목에 대해서는 기도를 하지 않게 되는 그런 상태를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내 마음 속 깊이 드려다 본 결과 이것은 결국은 게을러서 다시는 같은 제목을 놓고 기도하지 않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살면서 끊임없이 수많은 문제들이 닥치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마다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과 우리의 삶이 예상치 않은 끊임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즉 삶의 성질 자체를 모르는 나의 우매함을 발견했다. 결국 완전한 기도의 응답을 받아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평안한 상태의 엔돌핀과 그에 따르는 건강에만 관심이 쏠렸던 것이다.

      그리고 어떤 미국신학자가 쓴 책에 눈 뜨고 사람들 앞에서 수시로 기도하라는 것을 배웠는데 결국 이것은 성격적이 아니라는 것을 오랜 세월 끝에 알았다. 예수께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기도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시작해야지, 사람들의 앞에서 눈 뜨고 기도하는 것은 아주 여러 번 경험했듯이 내 영혼의 깊은 곳에 상처를 받기가 쉬웠다. 주님과의 교제중에 갑자기 불결한 대접이나 핀잔을 들으면 나의 영혼의 깊은 속살이 상처를 받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하루를 시작할 때에 골방에서 충분히 기도하고 기도의 응답을 기다릴 때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인생 전체의 성질을 이해하여서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고, 오늘 현재의 상황에 충실하게 하루를 말씀 가운데에 거하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