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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다 좋은데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아 있다. 부인이 참 아름다우면 그렇다. 성도의 교제라고 해서 교회에서는 남녀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이 있다. 그리 아니할지라도 남녀간에 사생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유부녀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외갓 남자와 눈을 맞추면서 대화를 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그런데 예수님은 살아서 자기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셨고, 믿는 즉시로 천국을 경험하며 산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많지가 않고 성경을 다들 읽으셨으리라고 가정한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은 더우기 그렇다. 그래서 증명을 하지 않고 넘어가겠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께서 천국에서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고 하셨다. 그런고로 따지고 보면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는 즉시로 천국이 시작되고 시집도 장가도 아니 가는 상태로 살게 된다는 의미는 바로 적어도 교회에서 만큼은 그런 상태가 유지된다고 하는 뜻이 된다. 그 말을 극단적으로 해석을 하며는 어떻게 풀어지냐 하면 내 아내가 다른 장로나 목사님을 더 사랑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예쁜 마누라를 가진 집사님은 얼마나 열불이 터질까?     

      "아니! 기껏 전도를 해서 나오라고 해서 나왔더니 마누라가 목사를 나보다 더 끔직하게 생각하고 위하네?" 라고 불평을 토해낼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자 허만 멜빌이라고 유명한 소설 백경을 쓴 저자가 말했듯이 사람은 혼자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무드나 상황에 따라서 이런 때는 이런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저런 때는 저런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탕자의 비유가 등장하면 효과적이다. "그러면 남편인 나는 뭐냐?"하고 물어보면 아내는 탕자의 아버지처럼 말할 것이다...."당신은 나와 항상 같이 있는 남편이니 내 것이 다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대, 교회생활을 하다가 보면은 남편들이 불만을 품고 질투를 하게도 될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를 알고 사랑에 관해서 길게 설명을 했다. 그 중에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라는 말씀이 등장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박춘동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이 글을 쓴다. 진짜 그리스도인의 참 사랑을 하려면 시기하지 말아야 한다. 구약에 출애굽기 34장에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하시고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런데 누구를 사랑하면 질투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되어진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고 사랑하는 만큼, 즉 사랑하면 할수록 질투도 그만큼 커진다. 그러나 절제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바울선생이 참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