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2 09:58

사자의 콧털

O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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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콧털

나는 바로 전의 글을 (예수를 영접한 자의 갈등) 써 올리고는 약간 후회를 했다. 느낀 점도 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더 좁게 말하면, OC1신앙 나눔터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참으로 신앙심이 깊고 지식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지식이라는 말은 예수가 참 유일한 하나님이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태까지 단골 독자들은 한 글 당 평균 15명 정도 읽으셨다. 그런데 예수를 영접한 자의 갈등이란 글은 제목만 보고도 읽지를 않으시는 분들도 여럿이 있다는 것을 보면 바로 알겠다. 예수님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것은 읽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네 분 밖에 읽지를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글을 읽으신 분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용기가 있고 예수님을 더욱더 친밀하게 가까이 모시는 분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한 자라는 말과 갈등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목만 봐도 벌써 예수님에 대한 불평을 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독자들은 알아차린 것이다. 제목만 보고 안 읽으신 분들은 나쁘게 말하면 다른 크리스찬들에게 책망을 받을까 봐 두려워서 겁을 내는 것이고 좋게 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하나님과 같으신 예수님에 대해서도 가진다는 말이다. 그래도 혹시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분간이 안 가서 이 글을 지워버릴까 하다가 그냥 놓아두었다. 또 내용은 놓아두고 제목을 바꿀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냥 놓아두기로 했다. 왜냐하면 인생살이에 있어서 누구든지 신앙의 어려움을 겪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모든 것이 잘되는 것같이 모든 사람이 글을 쓰고 말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려움을 서로 고백하기도 하고 아픔을 호소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것같이 친밀함을 갖는 것이 더 큰 축복인 것이다. 유대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가까운 친밀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아바(한국말라하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시고 기도하시어서 유대인들을 노를 샀던 것을 기억한다. 두려워서 주눅이 든 자식보다 차라리 아버지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아버지께 마음을 오픈하고 자기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자식이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통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열고 더 따스하게 서로를 대하고 비밀이 새어나갈까 두려워하기 보다 더 솔직하게 서로를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은 중요하다. 하지만 전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시다. 예수는 모퉁이 돌이시고, 성경에 이르기를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 사람을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셨다. 혹시라도 내 평생에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말로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리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