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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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의 커뮤니케이션

60년생인 나는 60년대에 자라면서 누구나 다 겪는 진통을 겪었고 비슷한 하류라면 하류인 계층에서 자라났다. 주위의 어느 가정이나 그렇듯이 아버지는 생활전선에서 바빠서 주 6일을 근무하셨고 어두워져서 늦게 들어오기가 일수였고 자정의 통행금지 시간에 맞춰서 들어오시는 날도 많았다. 어머니나 아버지나 그 시대의 나와 같은 서울 변두리의 가정들은 따스하게 자녀들과 대화하는 부모들은 적었고 무서운 정치싸움에 말려들어가지 않으려고 몸을 도사리고 말을 아끼는 시대였다. 2 2녀의 막내인 나는 특히 부모님이 의식주를 따스한 마음으로 사랑으로 해결해 주시는 것 외에는 별다른 다시 말하면 친구가 되어주시는 그러한 시간을 주위의 어느 누구나와 같이 갖지 못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머리를 박박 깍고부터는 원래 말이 없으신 아버지와는 더더군다나 말이 없었고 어머니와도 어색해지고 거리감이 생겼다. 중학교부터 이민수속을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두 해를 보내고 미국에 온 나는 City College에 다니고 4년제 대학에 편입하느라고 또 대화가 없었다. 그러다가 부모와 형제 자매들을 남가주에 놓아두고 북가주로 학교를 다니느라고 이사를 가고 졸업후에는 전공의 특성상, 북가주에 머물게 되어서 아주 오랫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거두절미하고 아버지가 하늘 나라에 가시고 나는 40대 초반부터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한쪽귀가 어렸을 적에 중이염을 앓고 수술을 한 뒤에 먹어버려서 듣지를 못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이유 없이 어머니는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신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를 관찰하고 대화의 채널을 터서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 후에 발견한 사실이 있는대, 어머니가 여자들끼리 대화를 하면 몇 시간이고 재미있게 대화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혹시 나의 음성주파수가 낮아서 그런가 하고 음성을 높게 내서 대화를 시도해 보았으나 너무 힘이 들고 별효과를 못 보았다. 그러고 나서 또 깨달은 바는 지금은 80대 후반인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 일제시대의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어 단어는 한 번에 알아들어서 일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일어를 하면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다정다감해지고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신다. 교회말로 축복을 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제2 외국어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배울 수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것도 장벽에 부딪혔다. 요새는 또 터득한 새로운 벙어리들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말을 할 때에 각 발음발음마다 입술을 크게 정확한 모양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 한국말일지라도 한 번에 알아들으시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무엇보다도 도움을 주는 것은 카톡이다. 어머니에게 스마트폰을 사게 하시고 카톡을 가르쳐드렸더니 눈이 좋으신 어머니가 아무 문제 없이 문자를 통해서 나와 잘 대화를 나누신다. 영혼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한다고 하는데 그 복을 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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