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8 21:34

소록도

O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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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우연히 교회에서 돌아다니던 소록도라는 책자를 발견한 한 집사님이 나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다. 이유는 내가 얼마 전에 소록도의 유래에 관해서 그 집사님에게 말을 했더니 그게 감동이 되었었는데 우연히 버린다는 책들 속에서 소록도라는 책을 발견했다고 그래서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그런 집사님이 내가 소록도에 관해서 잘 말해준 것이 고마워서 발견한 책을 들고 나를 찾아와서 더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내가 들은 방송에 의하면 일제시대 때에 문둥병에 걸리면 (요새는 점잖게 한센인이라고 한다.) 불임수술 즉 정관수술을 해서 아이를 못 가지게 했다고 한다. 그것에 분개해서 한센병에 걸린 분들이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 가서 죽기를 각오하고 데모를 했다고 한다. (참고로 조선총독부 건물은 8.15광복 이후에는 중앙청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후에 1989년에 철거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정부에서 소록도에다가 한센병에 걸린 분들을 몰아넣었다는 것이 유래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을 그 집사님에게 말해 주었더니 그것이 고마웠는지 우연히 발견한 그 책을 내게 가져다 주어서 은혜를 갚았다. 나는 그 자상함이 고마워서 그 책을 읽기 시작해서 반 이상을 벌써 읽었다.

      그런대 오스트랄리아에서 온 수녀 두 분이 60년 대 중반에 오셔서 2005년까지 40년을 봉사하시다가 한국 말로 된 편지를 방 앞에다가 남겨놓고 귀국하셨다고 한다. 그 구구절절이 사랑과 눈물이 담긴 편지가 책에 실려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본국으로 70세의 나이가 되어서 귀국한 이유는 사실 나이가 지긋이 드셔서도 있지만 약이 발달하고 대한민국의 사회복지가 발전함에 따라서 한센병이 불치의 병이 더 이상 아니고 환자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어서 할 일들이 아주 적어진 이유도 있다고 본다. 재미있는 것은 그 수녀들이 전라도의 사투리로 환자들을 돌보았다는 것이고 어머니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마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도 참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일본인이 철수를 하자마자 정부관리들과 소록도 주민들 사이에 분란이 일어난 것이다. 소록도 주민들은 자치제를 원했고 남은 한국인 관리들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정부관리가 치안대를 불러서 진압을 하다가 8명이 주민들이 죽고 연이어서 도합 84명이 치안대에게 죽임을 당하는 학살사건이 비극적으로 벌어졌다.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사건은 군정부가 들어선 후에 책임자로 오신 분이 오마도 간척사업을 주도해서 바닷가에 330만평의 땅을 만들었는데 정부에서 그것을 즉 소유권을 빼앗아 간 것이다.

      어쨓든 파란 만장한 소록도의 역사는 교회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거룩하게 한센병 환자들을 봉사하는 꿈을 그렸지만 그 꿈은 깨지고 말았다. 현대화되고 줄어든 일손이 그것을 옛날처럼 처절한 환경 속에서 심한 중증환자들을 돌보아서 예수님의 칭찬을 많이 얻기는 틀렸기 때문이다. 다 읽으면 교회의 도서관에 가져다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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