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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이기기

슬플 때는 예레미야 애가가 아주 적격이다. 많은 실패와 고통과 좌절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30대에 실연을 한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이 성경에 관한 책이어서 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부영이란 여자분하고 헤어졌을 때 나는 하루를 더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나는 날들을 세기 시작했다. 오늘은 결별한지 하루가 지났다. 그러고는 또 다음날은 오늘은 결별한지 이틀이 지났다 하고 견디기 어려운 하루를 또 견디고는 계속하여 날짜를 계수하기를 40일이 넘도록 하다가 드디어는 고통이 가시기 시작해서 날짜를 세기를 중단하였다. 그 세는 도중에도 틈틈이 성경적으로 영혼치료에 관한 책을 억지로라도 읽기를 쉬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오십 줄이 넘어서는 마음이 괴로울 때는 예레미야 애가를 읽곤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예레미야 애가는 첫 장 첫 절부터 애간장을 끓이는 내용이 나온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이 말씀의 절망적인 내용은 끝없이 일관적으로 예레미야 애가의 전반에 걸쳐서 나온다. 그토록 낙심한 자에게는 동류 즉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위로가 된다. 어떤 잘 나가는 사람이 아무리 위로를 해도 그 사람은 절망에 처한 자의 심정을 백퍼센트 이해를 못 한다. 그러니까 과부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동류로 돌아가는 것이 큰 치료를 해준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야단을 맞으면 어떻게 할까? 그 때는 약도 없다. 그냥 근신하면서 용서를 해주기를 바라야 하겠다. 근대 난 약간의 비결이 있기는 하다. 로마서 12 16절이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이말씀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함께 묵상해보면 내가 불행하다고 화를 내거나 하나님을 미워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홈리스들이나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또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세상을 생각해보면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보다 아주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고 또한 피조물인 이상 누구나 평생을 항상 행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항상 행복하고자 하는 생각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리고 인생이 그렇듯이 또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명하셨듯이 사람은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땅의 소산을 먹고 산다고 하셨다. 사실 항상 행복한 사람은 한 번 뭔가가 잘 못되어 가고 있다고 의심을 해 보아야 한다. 항상 우리는 밸런스를 맞추어 가면서 살아야 한다. 노동 후에 휴식을 맞보아야 하고 기도 한 후에 평안을 누려야 하고 많은 사랑을 한 후에 교제의 기쁨을 누리고 많이 전도한 후에 영혼구원의 결실을 맞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