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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8 6) 나는 이 말씀을 오늘 받았다. 육신의 일은 현저하게 눈앞에 보이고 긴급해 보이나 실은 사망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예수님이 요한복음 10 10절에서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영의 생각은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생각하면 생명을 얻고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성히 얻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상처를 치료해주기를 바라고 위로의 말을 먼저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나 내가 먼저 위로의 말을 하고 또 내가 먼저 남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 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나의 상처나 슬픈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치료받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사람들의 위로나 치료 그리고 가르침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선 순위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구하고 또 그렇지 않거나 여의치 않으면 사람에게서 받는 순서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로부터 치료를 받고 능력을 받으려면 보통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허점을 되도록이면 보이지 않고 신세를 지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부득이 한 경우는 할 수가 없지만 말이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힘을 쓰고 복음의 전파를 통하여서 예수를 믿는 크리스찬들을 많게 하라는 뜻이다. 나는 남의 귀하게 여기는 것을 내 마음대로 탐하고 마음으로 범하는 몹쓸 버릇이 있다. 착각은 이북에서도 자유라고 나는 생각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모른다고 마구 생각으로 죄를 지어왔다. 그래서 나의 영성이 황폐해지고 나의 마음이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그리고 기도를 많이 하신 신령한 분들은 알고 보고 깨닫는다. 그리고 사람은 영적인 피조물이라서 시간이 흐르면 또 저절로 깨달아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빠르나 늦으나 우리의 영성은 드러나고 탄로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사도바울의 말씀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선 것을 알고 늘 거짓없이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한 가지라도 책망할 것이 없는 삶을 날마다 살아나가야 한다.

      구원은 칼빈의 예정론이나 웨슬리의 자유의지론이니 뭐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원은 사도 바울에 의하면 단박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령에 붙들리어 날마다 말씀에 붙들리어서 흘러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바울에 의하면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케 해야 하고 구원을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그 상태를 구원이라 말하는 것이다. 빌립보서 312절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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