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1 00:02

은혜받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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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라

그의 귀에 아뢰라

그리고 그의 몸에 속하라!”


외견상 평범해 보이는 이 3가지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강하게 만드는 핵심 내용이다. 틀에 박힌 뻔한 내용처럼 들리지만, 이 단순한 습관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이 솟구치는 은혜의 통로에 서게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영적 습관이란 하나님의 은혜가 지나는 길목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수단은 전기스위치나 수도꼭지처럼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수단을 통해 은혜를 규칙적으로 베푸신다. ‘하나님의 음성듣기’, ‘기도’, ‘하나님의 몸에 속하기’와 같은 영적 습관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중요한 습관들이다. 하지만 이런 습관들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은혜주시는 자리에 우리 자신을 놓을 수는 있다. 신앙생활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 본문 중에서


책속으로

“일상적인 은혜의 수단은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귀와 하나님의 몸이다. 물론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종종 예기치 않은 은혜를 소낙비처럼 내려 주신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깊게 내려 진정한 성장을 이루게 하고, 새 날을 위해 우리의 영혼을 준비시키며, 지속적인 영적 성숙을 가져다주고, 기쁨의 강수를 넘치게 만드는 은혜는 무수히 많은 실천 행위와 습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교제와 기도와 성경 공부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원리에서 비롯한다.” -1장에서


“은혜의 습관 가운데 하나인 성경 읽기와 성경 공부는 우리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존재한다.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신비로운 능력이 존재한다. 우리가 늘 받아들여야 할 신비로운 은혜가 존재한다. 우리의 조력자는 다름 아닌 성령이시다.” -2장에서


“성경을 읽다가 묵상이 필요한 항목을 발견하면 그 말씀에 정신을 집중해 곰곰이 생각하고 기도를 드린다. 그러고는 그날에 할당된 나머지 성경 본문을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지 않고 곧장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나는 성경 읽기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과 기도를 통해 그분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떠올리곤 한다. 나는 그날에 할당된 성경 본문을 가교 역할을 하는 묵상과 기도를 통해 내 영혼을 배불리는 ‘말씀의 꼴’로 생각한다.” -3장에서


“모든 말씀을 자신에게 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여라. 말씀이 죄를 엄중히 꾸짖거든 ‘하나님이 내 죄를 책망하신다.’라고 생각하고, 말씀이 의무를 강조하거든 ‘하나님이 내게 이 일을 요구하신다.’라고 생각하라. 성경이 마치 처음 기록될 당시에 살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유익을 얻고자 한다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이는 약을 실제로 복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이치와 같다.” -4장에서


“암송은 미래에 결정을 내릴 때나, 다양한 상황에서 유혹에 맞서 싸울 때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성경 구절을 암송하는 그 행위를 통해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고 본문과 교감을 나누게 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5장에서


“기도는 은밀히 시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가 골방에만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기도는 삶 전체, 특히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위한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기도는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태도로 하루를 살아가야 하고, 또 동료 신자들과 더불어 기도하는 시간으로 이어져 나가야 한다.” -9장에서


“교제는 잡다한 화제를 거론하며 사이좋게 한담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박해와 커다란 악의 현실 앞에서 서로 합심해서 생사의 모험을 감행하는 것, 곧 모든 운명이 걸린 문제였다. 참된 교제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슈퍼볼’을 관람하는 것보다는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다음번 터치다운을 위해 동료들과 후위에서 무리를 지어 땀과 피와 눈물을 공유하는 것과 더 흡사하고, 승전의 날에 즐거워하며 길거리를 흥청망청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전우들과 더불어 노르망디 해안을 침공하는 것과 더 비슷하다.” -13장에서


“일상생활의 안개가 걷히고 하늘의 축복이 어렴풋이 드러날 무렵, 우리는 서재나 한적한 곳에서 골방 기도를 드리거나 위대한 그랜드캐년 앞이나 하나님의 장엄하심을 드러내는 산봉우리에 홀로 서 있지 않고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나온 큰 무리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보좌 앞에서 즐겁게 예배를 드린다. 우리는 공적인 예배를 위해 지으심을 받았다.” -14장에서


“설교는 단지 예수님을 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예수님은 설교를 통해 자신의 교회에 친히 임하신다. 좋은 설교는 교회가 성령을 통해 신랑이신 예수님과 관계를 맺도록 인도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말씀 사역은 청지기의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이끄는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는 충실한 설교를 통해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그분을 만난다.”

-15장에서


“나는 믿음은 있지만 크게 성장하지 못하는 영적 문제를 안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종종 만난다. 성경 공부가 귀찮은 허드렛일처럼 되고, 기도 생활이 메마른 습관으로 바뀌었다. 한때 큰 열정을 가지고 증언하던 회심의 기적이 희미해져 가는 먼 추억이 되어 버렸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단지 교회에 다니는 것뿐이다. 그들은 미온적이고 기계적인 태도로 고립화된 기독교의 고된 길을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무기력한 신자들이 영적인 고립 상태에서 벗어나 구도자들을 만나게 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19장


“우리는 항상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이를 피할 길은 없다. 지구 상에 있는 인간은 문화와 상관없이 모두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종속되어 있다. 모래시계의 모래는 쉴 새 없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그 광경을 외면하거나 막아 보려고 애쓰는 등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시간의 흐름을 저지할 수는 없다.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면 심각한 위험을 자초할 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지혜를 발휘해 우리의 짧은 인생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알고 선한 청지기처럼 잘 사용해야 한다.” -21장에서